=== 1차 필답 교환 ===

(106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이 책에 대하여 학생이 받은 인상에 크게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란색 색칠한 부분에 해당하는 문화콘텐츠(책,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어떤 유형의 콘텐츠든 무관)를 주기적으로 접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교양을 지속적으로 함양해 나가는 데, 그리고 정서를 고양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몇 년만에 클래식을 잔뜩 들었는데(자녀 숙제 때문에) 오랜만에 클래식 명곡들을 잔뜩 들으니 저 노란색 색칠한 느낌을 받아서 아주 좋았었습니다.

(126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지능과 변별되는 개념으로서의 감정으로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정보과학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매우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인공감정에 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인공지능과 구별되는 개념인 인공감정)에 관한 뉴스나 기타 읽을거리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부분 내용을 깊이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48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여 비판적 사고로 조망할 수 있는 발달 단계의 학생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만, 그 이전 발달 단계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소개하거나 가르치는 것 자체로 오염(부정적인 어감을 뺀 중립적인 어휘로 표현하자면 물듦)을 야기할 수 있어 취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교사 양성 기관(교대/사범대/교육대학원)에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부분이지요. 최근 무분별한 인터넷 매체로의 연결에 대한 보육 및 교육 당국의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에 해당합니다.

(168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저도 이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186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저 역시 학생의 생각과 일정 부분 비슷합니다. 작가가 ‘유연한 협력’이라고 작가가 표현한 내용은 사실 ‘딱 들어맞지 않아도 용납하는 마음씨’ 정도로 보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봇, 기게, 프로그램의 경우, 상대가 주는 입력 내용이, 입력되리라 기대한 그대로와 딱 들어맞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거나, 충돌하거나, 먹통이거나, 오류를 일으킵니다. ‘교섭’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의 경우 ‘그렇다면’이라는 사고, 그리고 ‘그 정도면 뭐 나름’이라는 사고가 가능합니다. 저는 이것이 유연한 협력보다는 ‘용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4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그렇죠. 정의(justice 말고 definition)의 문제이지요. 영혼의 ‘영’이 영속성의 ‘영’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이 영혼을 영원성과 결부하려고 합니다. 학생의 생각처럼 영혼을 ‘영혼’이라는 그 자체에 주목한다면, 굳이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 2차 필답 교환 ===

(228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동감합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펜싱 에페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가 당시 결승전에서 “그래,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를 되뇐 후, 단 한 타라도 동시타가 나오면(=비기면) 바로 패배하는 10:14 스코어에서 5점을 내리 따내며 우승했던 사실은 이성과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또는 얼마전 ‘유퀴즈’에 출연한 그것이 알고싶다 PD가 풀어놓은 이야기처럼 작두를 타는 것과 알 수 없는 방송장비 사고도 그렇고요. 여기서 우리가 너무 신비주의로 흘러가면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분명한 건 현재 인류의 논리학과 이학공학(수리&물화생지)에서 충분히 다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력의 영역을 삶에서 신경 쓰며 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42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제 경우에는 종교가 개신교여서 살면서 이와 같은 비판을 많이 접했습니다만, 유대인인 저자가 이 정도로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은 저 역시 처음 접해 신선했습니다.

(273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학생이 인문사회계열 진학 희망자인지 이학공학계열 진학 희망자인지 또는 의학계열 희망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럽습니다만, 만약 학생이 이학공학계열이라면 인류에 있어서 저러했다는 사실이, 인공지능에도 적용되지 않을지 고찰해 보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은 약 인공지능, 강 인공지능, 초 인공지능 정도로 분류하는데, 초 인공지능을 위해서는 앞선 피드백에 언급했던 ‘논리와 이학공학’만으로 충분할까에 대한 고찰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올해 LEET(법학적성시험)에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공감정’에 관한 지문이 나왔는데요, 혹시 관심이 간다면 읽어보고 풀어도 보는 것을 권합니다.
법학적성시험 홈페이지 leet.uwayapply.com 접속 후 [자료실]-[기출문제]에서 44번 게시물 ‘2022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언어이해 문제 및 정답’ 홀수형 기준 13쪽(25~27번)

(291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저도요. 흔히 인류의 화합이나 평화와 결부되는 것은 종교이고, 종교라고 하면 보통은 비현실적이고 신비적인 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서 탈피하면 자본주의를 종교가 놓인 자리에 두고, 인류 화합의 차원에서 조망해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305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음… 앞서 291쪽에서 종교를 꼭 비현실과 신비에 방점을 두고 인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저자가 시사하였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경우 종교의 위치에 교육 만능주의, 학벌주의, 능력주의, 시험(통과의례) 만능주의, 서울 중심주의, 민족주의(순혈주의), 그 외 기타 정치이념 등을 가져다 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종교’, 자본주의, 계약의 삼위일체로 조망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26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크… 학생의 고찰 내용 중 “하긴 “옳다” “그르다”라는 말 자체가 인본주의에 적합하진 않은 것 같지만” 부분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본주의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는 것도 훌륭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케스트라나 연극, 뮤지컬 같은 ‘집단-종합-예술활동’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이러한 활동에서 (물론 연습, 준비, 조율 과정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무사히 그리고 멋지게 공연을 마쳤을 때 개개인이 받는 희열은, 1인 예술활동 또는 기타 비예술활동에서 얻는 희열에 비하면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합니다. 이때 참여했던 개개인은 자신의 ‘안간힘’과 ‘열중’이 장대하고 거대한(=집단의) 궁극적 성취에 이바지했다는 느낌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지금도 적은 보수와 열악한 직업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위와 같은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언젠가는 대박 터뜨려서 메이저에서 떼돈을 벌겠다’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숱한 예술인들이 계속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에도 저런 ‘정신적 고양감’이 큽니다.
그런데 인류에 현재와 같은 인본주의만 남게 되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충만하거나 고양되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여기서 삶의 의욕이나 자신이 삶에 대한 가치를 모두가 느끼기 어렵습니다. 종교가 있을 때는, 내가 인류사에 또는 적어도 내가 몸담은 분야에서 후대에 기억될 만한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종교의 일원으로서 기여했다는 점에서 삶의 가치와 충만감을 느끼며 긴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모두 제거되면, 대단해지지 못한 절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무언가를 구매(소비)할 때만 순간적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여가활동에서 예체능 분야의 집단활동을 하게 하려는 것인데, 이 역시도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이 적절할지에 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사회의 정상적 유지가 힘드니까요.
그래서 인류가 인본주의만으로 흐를 경우, 그 결말은 [희망편: 인간사회와 자연환경이 알아서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인간은 기본소득으로 정신적 고양감와 충만함을 결핍 없이 누리는 인류], [절망편: 상위 0.01%의 인간만이 본인의 삶이 가치로움을 느끼며 생(生)을 만끽하고, 하위 99.99%의 인간은 들러리가 되는데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지도, 개선하지도 못하며 그저 살아가는 인류] 중 하나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희망편]도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329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지식=경험×감수성’은 정말 참입니다. 살아가면서 더더욱 진리임을 느끼게 될 겁니다.

(356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그렇죠. 대뜸 소화하기엔 벅찬 내용입니다. 다 이해했다고 속단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위에 네 문단으로 길게 쓴 326쪽 피드백을 참조해 사색해보길 권합니다.

(368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저 역시 학생의 생각과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사회주의는 어찌 보면, 제가 앞페이지에서 길게 썼던 인본주의의 한계를 아주 1차원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대통령, 꼭 유명인, 꼭 1인자가 되지 않더라도 다수에 해당하는 개개인이 삶의 고양감과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할 방편으로 ‘당’으로 내세운 셈이지요. 경제를 비롯한 나머지 영역은 모두 이를 위한 부수적인 내용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1차원적인 해결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학생이 지금 느낀 바와 같고요.
그리고 미국과 민족주의가 언급되어서 덤으로 소개하자면,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아주, 아주, 아주 각별합니다. 이 역시 삶의 고양함과 충만함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더 사색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추천합니다. ‘신’에서 주인공이 운용(?)하는 일종의 초기인류가 ‘장례’를 가벼이 하지 않는 내용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81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선 선진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부분에서 감탄했습니다. 이번 2차 BOOK-ing에서는 학생보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깨닫고 갑니다.

(2차 필답 맺음말) 너무 무게감 있는 내용으로만 피드백을 드린 것 같아서, 조금 일상적 내용을 환기해 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년 동안 ###하면 ####만원 준다고 했을 때, 함? 안 함?” 같은 글이 이따금 올라와서 어그로를 많이 끌죠. 이런 글에서 한다를 선택하는 쪽과 안 한다를 선택하는 쪽이 어떻게 범주화되는지를 본다면, 인본주의에 대해서 조금은 덜 무겁게,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대입, 대학생 때 임용, 임용 이후에 세화고로 이직 등을 생각하며(그 가운데 게임이나 동아리 등 비 생업에서의 업적 쌓기, 연애 등에도 열중하며) 삶을 계속 ‘전진’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는 죽음, 삶 등에 대한 고민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식을 낳아 기르다 보니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더 자주 합니다. 특히 나의 죽음과 내가 죽은 이후 내 자식이 살아갈 세계에 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 자연히 늘게 되고(이전까지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 죽음과 삶이 더 피부로 와닿는 주제가 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이성적‧논리적 요소들로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굳건한 인간은 의외로 많지 않음을 느낍니다. 아마 그래서 젊은 나이에 너무 성공한 연예인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흐트러지는 뉴스가 종종 나오나 싶기도 합니다. 학생이 인문사회계열이라면… 그래서 2021년에도 칸트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길 권합니다. 파이팅!

 

 

 

=== 3차 필답 교환 ===

(3차 필답 여는 말) '2022년 1월 9일 24:00 업로드 예정'이라고 써 놨었는데 예정일보다 많이 늦었네요. 예정일에 맞추지 못해 미안합니다.

 

(398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저는 '과학의 앞길을 막기보단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는 학생의 결론에 수긍하면서도, '함께'에 방점을 두고 싶습니다. 과학이 다른 분야와 발맞추지 않고 단독으로 질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그것이 과학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어서는 안 되겠죠. 과학의 발전상만큼 타 분야에서도 인류의 발전상은 활달하게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410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우뇌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 좌뇌의 영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거는 그거대로 끔찍하겠다'는 염려를 느꼈다고 했는데, 제가 바로 우뇌가 발달한 인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는 철저한 왼손잡이거든요. 하지만 '저지르고 수습' 형태의 삶을 산다기보다는 '좌뇌와 우뇌의 동시 협의'가 많은 편입니다. 아무래도 제 아무리 왼손잡이일지라도 대한민국 현대 사회에서 문명인으로 살아갈 때 오른손을 최소한 일정 비율 이상은 사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인가도 싶습니다(키보드, 마우스, 스마트폰 등). 그리고 통찰이나 감정(⊃충동) 같은 것들도, 충분히 양질의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아주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실행의 단초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학문 외적인 영역에서는요. 통찰과 감정이 완전히 랜덤(Random)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숱한 경험에서 촉발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요.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충분하게 데이터(경험)를 양질로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 왜곡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통찰과 감정이 대부분의 경우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의사결정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삶의 모든 것에서 항상 숙의, 숙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삶은 몹시 고단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충분한 양질의 데이터(경험)을 수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편향과 왜곡을 피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독서'입니다.

 

(417쪽에 남긴 첫 번째 메모에 대한 필답) 그렇죠. 그래서 모든일은 '시작이 반'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끼기로는, 어떤 일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의논, 협의, 숙의를 실행의 초기하는 것이, '아 몰라, 일단 시작해, 일단 이렇게 해.' 식으로 저지르다가 중기나 말기에 의논, 협의, 숙의해서 수정, 보완, 수습하는 것보다 항상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장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서,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어리석은 사태가 생기곤 합니다.

 

(417쪽에 남긴 두 번째 메모에 대한 필답) 저도 학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전기적 신호라는 것이 단조로운 망(network)가 아닐진대, 현재 '자유의지'라고 불리고 있는 것은 유의미하게 실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0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동감합니다. 다만, 초지능의 경우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소수가 취급 권한, 우선 접근권을 갖게 되었을 때의 오남용이 두렵고, 초지능 자체의 위력에 인류가 압도될까 두렵습니다.

 

(445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그에 반해 인간은 원형이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대목에 대해서 덧붙여 말하자면, 이러한 행위의 가치는 결국 '감식안'이 존재할 때에만 유의미합니다. 감식안이 없다면 모든 예술의 종국은 AI의 승리, 지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AI는 빅데이터를 빠르고 간편하게 주무를 수 있다보니 창작물의 대중성, 생산성에서 인간보다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460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학생의 메모는 인술(仁術, 人術)을 환기하는군요. 불로불사에서 저는 '불로'에는 두 말할 것 없이 OK입니다만, '불사'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죽음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기는 합니다만, '불사'가 된다면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주요 특성(공동체의 유산으로 남거나 계승되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 좋은 의미에서 '발버둥'의 가치)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만약 '불사'가 현실에서 가능해졌다고 했을 때, 인간이 일종의 '긴 잠'과 같은 휴지기를 본인의 의사와 선택에 따라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지기를 가진다 하더라도, '존재의의' 차원의 이슈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기도 하고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467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네, 제가 430쪽 메모에 대하여 작성한 필답과 동일한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473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현재도 다음 세대로 갈수록 파편화, 비총체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남성의 경우 군대라는 특수성도 고려하여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79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대의민주주의나 철인정치에 대한 고찰을 환기하는 메모네요. 학생의 제언은 지배계급이 권력을 덜고 책무성은 더한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메모 마지막 내용의 경우, 설계 및 프로그래밍에서의 오염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491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크……. '그러나 우린 결국 인간이고, 박쥐나 고래가 세상을 인식하고 느끼는 것을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에 몹시 공감합니다. 그리고 인간과 다른 종 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 내에서도 사실 이렇습니다.

 

(497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다운그레이드'와 '업그레이드'로 책의 화두를 풀어내는 것이 참으로 참신한 발상이군요. 다만, 외주를 많이 주는 공무원, 정부부처, 공기업, 사기업일수록 자체의 역량은 다운그레이드 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이 부분은 수정하여 본인의 발상을 더 깊게 가다듬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519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상용된 지 10년밖에 안 된 개념이 인간의 기본 틀을 들추고 있는 것이 뭔가 예사롭지 않다. 대가 없는 돈은 없듯이, 무엇인가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학생의 말에 개인적으로 200% 같은 심정입니다. 우리가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숙지)에 끝없이 소홀하지 않는 것만이, 후폭풍을 잠재우고 파국을 막는 길일 것입니다.

 

(544쪽에 남긴 메모에 대한 필답) 저도 사실 너무 어려운 개념이라고 느꼈습니다. 앞의 '불로불사' 관련하여 남긴 필답만큼이나, 뾰족한 진리를 찾기 어렵네요. 둘을 엮어서 고민해 보아도 좋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차 필답 맺음말) 사제BOOK-ing에서 가장 쪽수가 많은 책을 맡게 되어 처음에 몹시 부담스러웠습니다(물론 끝까지도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부담과는 별개로, 학생이 책마다 남긴 메모가 워낙 좋아서 저에게도 유익한 필답 시간이었습니다. 세 달간 3차에 걸쳐 제때제때 메모 제출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학생의 메모에 대한 제 답들이 유익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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